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처진 공격수 Top 21~30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오리운디의 경우에도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는 모두 포함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5월 11일 기준입니다.
30위 마르코 시모네
생년월일: 1969년 1월 7일
A매치 기록: 4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AC 밀란
밀란 제너레이션 1기 시대에 준주전으로 활약하며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다재다능한 공격자원으로 주 포지션인 처진 공격수 이외에도 최전방 스트라이커와 좌우 윙어를 소화할 수 있었으며 키는 작은 편이었지만 빠른 스피드와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적절한 움직임, 그리고 탄탄한 볼 컨트롤을 바탕으로 한 테크니컬한 드리블로도 이름을 날렸다.
비르디스와 콜롬보의 대체자로 AC 밀란에 합류한 시모네는 사키 체제와 카펠로 체제에서 준주전으로 활약해 세리에 A 4회 우승 및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회 우승을 이뤄냈고 UEFA 챔피언스리그와 유러피언 슈퍼컵 2회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리그앙의 파리 생제르맹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이다가 2001-02 시즌에 AC 밀란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29위 주세페 갈데리시
생년월일: 1963년 3월 22일
A매치 기록: 1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엘라스 베로나
전성기는 짧았지만 1980년대 중반 세리에 A에서 명성을 날린 판타지스타 스타일의 포워드로 작은 녀석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왜소한 체격이었지만 날렵하면서 적절한 공간침투와 효과적인 패스를 이용한 찬스메이킹, 그리고 왕성한 활동량으로 빈 공간을 끊임없이 노렸던 지구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약점을 훌륭하게 보완했다.
당대 잘 나가던 유벤투스 유스팀 출신이었지만 베테가, 보니엑, 로시와 같은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그의 자리는 없었고 결국 엘라스 베로나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린 갈데리시는 프레벤 엘카에르, 안토니오 디 젠나로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며 1984-85 시즌, 팀의 기적적인 세리에 A 우승을 이끌었고 이때 이탈리아 대표팀에도 소집되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알토벨리와 함께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AC 밀란으로 이적한 뒤에는 굴리트와의 주전 경쟁에서 패하며 도태되기 시작했고 라치오와 베로나에서도 부활에 실패하자 결국 세리에 B의 파도바로 이적했는데 파도바를 세리에 A로 승격시켰지만 정작 승격한 이후에는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결국 미국에서 뛰었다.
28위 세르지오 고리
생년월일: 1946년 2월 24일
A매치 기록: 3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칼리아리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중반, 이탈리아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처진 공격수로 준수한 스피드와 유려한 볼 컨트롤을 활용한 뛰어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돌파했고 치명적인 쓰루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중앙에 머물다가도 측면으로 빠져서 크로스로 아군 스트라이커를 지원하는 부분에도 능했음은 물론 우수한 위치선정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고 헤더로 마무리하는 부분에도 능했다.
인테르의 유스 출신이지만 칼리아리에서 만개한 고리는 루이지 리바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며 1969-70 시즌 구단 역사상 유일한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이때의 활약으로 이탈리아 대표팀 소속으로 1970 멕시코 월드컵에 백업으로 참가해 준우승을 경험했다. 전성기가 지난 말년에는 유벤투스로 이적해서는 백업으로 1976-77 시즌 세리에 A와 UEFA컵 더블에 공헌하기도 했다.
27위 마르코 델베키오
생년월일: 1973년 4월 7일
A매치 기록: 22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AS 로마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이탈리아 무대를 호령했던 다재다능한 공격자원으로 상대 수비를 교란시키는 전진 드리블과 킬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었으며 왕성한 활동량을 이용한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팀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인테르 밀란에서 데뷔했으나 호나우두, 바조, 사모라노 등 뛰어난 공격수들에 밀려나며 오래 머물자 못했던 델베키오는 AS 로마로 이적해서 누렸는데 2000-01 시즌에 토티, 바티스투타와 삼각편대를 구성해 스쿠테토 획득에 큰 공을 새웠고 특히 지역 라이벌 라치오를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델 피에로의 백업으로 종종 소집된 델베키오는 UEFA 유로 2000과 2002 한일 월드컵 스쿼드에 포함되었는데 전자의 대회에서는 결승전에 선발로 출전했지만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고 후자의 대회에서는 16강에서 조기 탈락하는 비극을 겪었다.
26위 주세페 사볼디
생년월일: 1947년 1월 21일
A매치 기록: 4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볼로냐 FC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세리에 A에서 이름을 날렸던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빠른 반응속도와 날카로운 슈팅 스킬, 그리고 높은 점프에서 나오는 강력한 헤더로 상대의 골문을 폭격했고 주 포지션인 처진 공격수 이외에도 최전방 공격수와 레프트윙, 그리고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도 수행할 수 있는 만능 공격수였는데 페널티킥으로만 45골을 득점해 세리에 A 통산 페널티킥 득점자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아탈란타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낸 샤볼디는 볼로냐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구단 통산 득점 4위에 랭크되었는데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과 1970년 이탈리아-잉글랜드 리그컵 우승을 이뤄냈고 1970년대 중후반에는 나폴리에서 주력으로 활약하며 1975–76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아탈란타와 볼로냐, 그리고 나폴리에 머무는 동안 무려 13 시즌 연속으로 공식전 두 자릿수 골을 득점했고 세리에 A로 한정지어도 여덟 시즌 연속으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음은 물론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 3회 수상 및 1972-73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다.
25위 파비오 콸리아렐라
생년월일: 1983년 1월 31일
A매치 기록: 28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UC 삼프도리아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한 공격수로 쉬운 찬스는 자주 놓치지만 발리슛, 로빙 슈팅 같은 난이도가 높은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한다고 하여 국내 팬들로부터 '콸간지'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실제로도 2008-09 시즌과 2018-19 시즌에 세리에 A 올해의 골에 선정되며 그 명성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그 밖에도 왕성한 활동량과 우수한 오프 더 볼 능력으로 상대 수비진을 분산하는데 능했으며 헤더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2006-07 시즌 삼프도리아에서 데뷔한 콸리아렐라는 우디네세를 거쳐 2009-10 시즌 나폴리까지 네 시즌 연속 세리에 A 두 자릿수 골을 득점하며 리그 정상급 공격수로 군림했으나 유벤투스에서 머문 첫 시즌에 전반기에만 9골을 넣었음에도 부상으로 후반기를 모두 결장하며 아쉽게 기록을 이어나가지 못했고 테베스와 요렌테 영입 이후에는 백업 공격수 역할을 맡으며 세리에 A 3회 연패를 경험했다. 토리노를 거쳐 삼프도리아에서 다시 상승세를 탄 콸리아렐라는 무려 다섯 시즌 연속으로 리그 10골 이상을 기록했고 특히 2018-19 시즌에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코어러 중 한 명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제치고 세리에 A 득점왕을 수상했음은 물론 세리에 A 올해의 공격수와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종종 출전한 콸리아렐라는 UEFA 유로 2008, 2009 컨페드컵, 그리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눈에 띄는 실적을 내진 못했지만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는 다루기 어렵다는 자블라니로 로빙 슈팅으로 득점하며 대회 최고의 골 중 하나로 평가받을 명장면을 남겼다.
24위 에르마노 아에비
생년월일: 1892년 1월 13일
A매치 기록: 2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10년대 인테르 초창기에 공격을 이끌었던 플레이메이커로 우수한 슈팅 능력과 탄탄한 볼 컨트롤을 자랑했으며 우수한 패싱력으로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능했다.
이탈리아계 스위스인이었던 아예비는 인테르에서 오랜 시간 활약했는데 1919-20 시즌 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23위 브루노 조르다노
생년월일: 1956년 8월 13일
A매치 기록: 13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1970년대~80년대 세리에 A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화려한 드리블과 유려한 볼 컨트롤, 그리고 날카로운 슈팅스킬로 이름을 날렸다.
라치오에서 데뷔한 조르다노는 비록 라치오에서는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엄청난 득점력을 보이며 1978-79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고 1982-83 시즌에는 세리에 B 득점왕에 랭크되었고 라치오를 떠나 나폴리로 이적한 이후에는 디에고 마라도나, 카레카와 함께 마지카(Ma-Gi-Ca) 삼총사로 이름을 날렸던 조르다노는 1986-87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을 이뤄냈으며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득점왕에 올랐다.
라치오에서 활약하던 도중 1980년에 일어난 토토네로 스캔들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아 엔리코 알베르토시, 파울로 로시, 리오넬로 만프레도리아 등과 함께 2년 자격 정지를 당하기도 했는데 법원에서는 무혐의를 받았음에도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22위 미구엘 몬투오리
생년월일: 1932년 9월 24일
A매치 기록: 12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아르헨티나계 흑인 출신 이민자로 WM 시스템의 인사이드 레프트로 활약했는데 우수한 원터치 플레이와 뛰어난 드리블과 정교한 패싱력을 활용한 찬스 메이킹은 물론 높은 차원의 스쿱 턴으로 상대 수비수를 기만하거나 양발 슈팅으로 직접 때리는 부분에도 능했다.
조국 아르헨티나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했고 칠레의 우니베르시다드 카톨리카에서 두각을 나타낸 뒤 피오렌티나로 이적해 전성기를 보낸 몬투오리는 비올라의 1955-56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이후 4회 연속으로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56-57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 올랐고 1960-61 시즌에는 팀의 주장으로서 코파 이탈리아와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이 황금기를 누리는데 일조했다.
흑인 최초로 아주리에 발탁되어 활약했지만 몬투오리가 전성기를 누리던 세대의 아주리는 최악의 암흑기를 겪고 있었기에 메이저 대회에는 나오지 못했으며 1961년에는 페루자와의 친선경기 도중 공에 눈을 맞아 망막박리로 시력장애가 발생해 은퇴했다. 사후인 2016년에 피오렌티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1위 안토니오 카사노
생년월일: 1982년 7월 12일
A매치 기록: 39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UC 삼프도리아
2000년대 초반 엄청난 기량으로 이탈리아 축구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천재로 악마의 재능이라 불렸을 정도로 난폭한 성격과 무절제한 사생활과 기행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유려한 볼 컨트롤에서 나오는 기막힌 원터치 플레이와 상대방을 속이는 페인팅과 굳건한 신체 밸런스를 겸비했으며 창의적인 킬패스로 완벽한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다.
바리에서 데뷔해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로마에 입성한 카사노는 2001년과 2003년에 세리에 A 올해의 영 플레이어상을 받았고 2005-06 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에 이적해 2006-07 시즌 라리가 우승을 경험하나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 호비뉴, 라울과의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나며 삼프도리아로 이적했다. 이 무렵 결혼으로 인해 마음을 다잡고 삼프도리아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2009-10 시즌 세리에 A 4위에 올렸고 2010-11 시즌에는 AC 밀란의 세리에 A 우승에 공헌했다.
델 피에로의 후계자로 UEFA 유로 2004에서 아주리 군단에 처음 소집된 카사노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리피와의 불화로 인해 명단에서 제외당했다. 그 뒤 이탈리아 대표팀과는 멀어졌다가 UEFA 유로 2012에서 발로텔리와 공격 조합을 이루며 조국의 준우승에 공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