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10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오리운디의 경우에도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는 모두 포함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5월 11일 기준입니다.
10위 엔리케 구아이타

생년월일: 1910년 7월 11일
A매치 기록: 10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AS 로마
1930년대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양 무대에서 모두 훌륭한 활약을 보여줬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신체적으로 강인하진 못했지만 스피드가 빨랐고 기술적으로 우수했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써 양발로 중거리 슈팅을 날려대며 원더골을 뽑아냈다.
아르헨티나 시절에는 에스투디안테스에서 활약하다가 이탈리아로 귀화하면서 AS 로마로 이적한 구아이타는 1934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과 1934-35 시즌 세리에 A 준우승과 리그 득점왕을 수상하며 검은 해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팬들의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1936-37 시즌 세리에 A 개막을 앞두고 이탈리아와 에티오피아의 전쟁에 징병된다는 루머를 듣고 이탈리아에서 도망쳐 아르헨티나로 다시 귀화하며 라싱 클루브로 이적했고 아르헨티나 대표팀 소속으로 1937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다.
9위 지노 콜라우시

생년월일: 1914년 3월 4일
A매치 기록: 26경기 15골
신체조건: 키 163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US 트리에스티나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 초반에 이탈리아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공격 자원으로 키는 작았지만 다부진 체격을 보유했으며 빠른 스피드도 갖춰 이 조건을 활용해 페널티박스로 빠르게 침투해 왼발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했으며 주 포지션인 아웃사이드 레프트는 물론 센터 포워드도 소화할 수 있었다.
중위권 구단인 트리에스티나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나 소속팀 전력의 한계로 인해 우승은 이뤄내지 못했던 콜라우시는 유벤투스에서 1941-4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공헌했으며 아주리 군단에서도 1933-1935 중유럽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우승에 공헌했으며 대회 올스타 팀에 드는 활약을 보여줬다.
1938년 지노 콜라우시는 잉글랜드 축구협회 창립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잉글랜드 vs 유럽 올스타 경기에 참가해 백업으로 나섰다.
8위 안젤로 도멘기니

생년월일: 1941년 8월 25일
A매치 기록: 33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60년대와 7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윙어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측면에서 시작해 중앙으로 침투한 뒤 강력한 양발 슈팅으로 득점하는 컷인 플레이에 능했으며 프리킥에도 능해 프리킥 전담 키커로도 명성을 날렸다.
아탈란타에서 데뷔해 1962-63 시즌 아탈란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끌고 본인도 득점왕에 올라 스타덤에 오른 도멘기니는 이후 인테르로 이적한 뒤에는 자이르 다 코스타, 마리오 코르소의 백업 역할을 맡아 세리에 A 2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1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6-67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는 선발로 출전했으나 셀틱에 아쉽게 패했다. 이후 칼리아리로 이적해 1969-70 시즌 칼리아리의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UEFA 유로 1968에 주전으로 활약하며 유고슬라비아와의 결승 1차전에서 선보인 예술적인 오른발 프리킥골로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우승에 공헌했고 이러한 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의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7위 마리오 코르소

생년월일: 1941년 8월 25일
A매치 기록: 23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60년대 이탈리아 최고의 윙어로 적은 활동량에도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파케티의 오버래핑을 도왔으며 정확하면서도 강력한 왼발 킥력과 비단뱀처럼 부드러운 드리블 실력을 갖춰 팬들로부터 '뱀 인간', '신의 왼발'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인테르 밀란에서 보낸 코르소는 1960년대 중반,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인 그란데 인테르의 시대를 이끌었는데 지아친토 파케티와 함께 왼쪽에서 콤비 플레이를 보여주며 세리에 A 4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과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뤄내는 등 구단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코르소 개인도 1964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7위에 올랐고 1965년에는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15위에 올랐다.
다만 아주리 감독인 에드문도 파바리 감독이나 그 후임자인 페루치오 발카레지 감독과의 불화로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거의 소집되지 않아서 대표팀에서는 클럽팀에서의 위대한 흐름을 이어가진 못했다.
6위 로베르토 도나도니

생년월일: 1963년 9월 9일
A매치 기록: 63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AC 밀란
1990년대 초반 유럽 정상급 오른쪽 날개로 특유의 왕성한 활동량에서 나오는 넓은 활동반경을 겸비해 최전방에서 공격을 이끌면서도 어느샌가 최후방으로 내려와 수비에 가담하는 플레이에 능했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써서 양 측면 윙어를 모두 볼 수 있었으며 높은 축구 지능과 경기 영향력을 앞세워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도 볼 수 있었다.
아탈란타에서 데뷔해 아리고 사키와 파비오 카펠로 체제의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린 도나도니는 구단의 황금기인 밀란 제너레이션 1기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세리에 A 5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과 2회 준우승을 이뤄내고 북미의 메트로스타스로 이적해 북미 리그 올스타 팀에 두 번 들었다가 다시 AC 밀란으로 돌아와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장기간 활약한 도나도니는 UEFA 유로 1988부터 대표팀에 뽑히기 시작해서 해당 대회에서 준결승 진출에 공헌한 것을 시작으로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3위에 올랐고 1994 미국 월드컵 결승 진출이라는 호성적을 이루는데 큰 공을 세웠다.
5위 프랑코 카우시오

생년월일: 1949년 2월 1일
A매치 기록: 63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 중 한 명으로 오른쪽 측면을 가르는 기습적인 질주에 이은 우수한 오른발 크로스로 팀 공격을 지원했으며 화려한 움직임과 깨끗한 사생활을 겸해 남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트라파토니 시절 유벤투스의 황금기를 이끈 카우시오는 세리에 A 6회 우승과 1976-77 시즌 UEFA컵 우승과 1977-7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고 카우시오 개인도 1976년에는 스포르트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2위에 올랐음은 물론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은 카우시오는 1974 서독 월드컵에서 메이저 대회 데뷔를 했고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UEFA 유로 1980에서는 주전 선수로 이탈리아의 4강행을 이끌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백업 선수로 우승을 경험했으며 결승전에 교체 출장하기도 했다.
4위 지암피에로 보니페르티

생년월일: 1928년 7월 4일
A매치 기록: 38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50년대 이탈리아 축구의 아이콘으로 폭발적인 슈팅력에서 나오는 우수한 득점력과 전광석화와 같은 드리블로 수비진을 벗겨내는 플레이에 능해 아웃사이드 라이트와 센터 포워드, 그리고 인사이드 포워드에서 모두 좋은 기량을 발휘했다.
클럽 커리어를 전부 유벤투스에서만 보내며 구단 통산 출전 9위 및 구단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비안코네리의 판타지스타 보니페르티는 세리에 A 6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에 기여했는데 그 과정에서 1947-48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을 차지한 보니페르티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말년에는 오마르 시보리, 존 찰스와 함께 트리오 마지코를 구성해 활약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페르가의 비극으로 인해 토리노 선수들을 잃으며 이탈리아 축구가 암흑기를 헤매던 시절이라 1950 브라질 월드컵과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3위 알시데스 기지아

생년월일: 1926년 12월 22일
A매치 기록: 5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2kg
주 소속팀: AS 로마
당대 남미 최고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빠른 스피드와 상대 수비수를 완벽하게 속여 넘기는 교묘한 발재간을 겸비한 높은 수준의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허문 뒤 날카로운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내는 부분은 물론 골 결정력도 뛰어나 중요한 순간에는 직접 해결하는 클러치 능력도 보여줬다.
페냐롤에서 5년간 우루과이 무대 최고의 선수로 명성을 날린 기지아는 1949 시즌과 1951 시즌에 두 번 우승했는데 특히 1949 시즌에는 리그에서 16승 2무의 성적으로 무패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 결승리그 최종전에서는 브라질을 상대로 역전골을 기록해 브라질을 무너트리고 우루과이를 우승시켰으며 이때의 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는데 이때의 일로 파울로 로시와 함께 브라질 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축구선수로 손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국가대표팀 경력은 조기에 끝나는데 자국 리그에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을 폭행해 중징계를 받자 이탈리아로 출국해서 AS 로마에서 활약하며 국가대표팀에 부름을 받지 못했다. 물론 로마에서도 뛰어난 활약으로 팀은 암흑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지아는 팬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아 로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고 이탈리아 대표팀에도 소집되었다.
2위 브루노 콘티

생년월일: 1955년 3월 13일
A매치 기록: 47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AS 로마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으로 평가받으며 빠른 스피드와 교묘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교란했으며 뛰어난 양발 능력을 바탕으로 날렵한 크로스로 공격수를 지원했으며 적극적인 수비 가담 능력을 통해 수비형 윙어인 토르난테 역할도 수행 가능했다.
선수 생활을 모두 AS 로마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브루노 콘티는 1982-83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3-84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카우시오를 밀어내고 주전으로 군림한 브루노 콘티는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특히 전자의 대회에서는 공수 양면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치며 우승에 기여하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에 올랐다.
1위 라이문도 오르시

생년월일: 1901년 12월 2일
A매치 기록: 35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20년대와 30년대 당시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빠른 스피드와 교묘한 드리블을 겸비해 상대 수비수를 속이며 크로스를 올려 공격수를 지원하는 능력과 왼발 슈팅으로 직접 마무리하는 능력 모두 훌륭했으며 중요한 경기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아르헨티나의 인데펜디엔테에서 데뷔해 정규리그 우승 3회를 이뤄낸 라이문도 오르시는 이탈리아로 건너가서는 유벤투스의 공격진 핵심으로 세리에 A 5연패에 큰 공을 세워 구단을 전국구급 인기 구단으로 만들었고 다시 남미로 돌아가서는 페냐롤에서 우루과이 프리미어 디비시온 우승을 했으며 플라멩구에서 캄파오네투 카리오카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시절에는 1927 코파 아메리카 우승컵을 들어냈고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오르시는 이탈리아로 귀화한 뒤에는 1927-30 중유럽컵과 1933-35 중유럽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1-0으로 뒤지던 와중 구아이타의 크로스를 받아 골대를 등진 채로 오른발로 공을 받았고 골대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바로 왼발로 터닝 슈팅을 날려 동점골을 기록하며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 갔으며 결국 아주리의 우승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