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11~20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오리운디의 경우에도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는 모두 포함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5월 11일 기준입니다.
20위 아니발레 프로시

생년월일: 1911년 7월 6일
A매치 기록: 5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이탈리아 무대에서 전성기를 누린 아웃사이드 라이트 겸 센터 포워드로 어렸을 때부터 근시로 고통받은 후 몇 년 동안 교정 안경을 쓴 것으로 유명했는데 근시였지만 우수한 득점감각과 매우 빠른 스피드, 그리고 우수한 전술안을 바탕으로 팀의 세트 플레이의 훌륭한 실행자로도 활약했다.
초년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라퀼라 칼초에서 두각을 나타낸 뒤 인테르로 이적했음은 물론 아주리 군단에도 소집되며 전성기를 누린 프로시는 세리에 A 2회 우승 및 1938-39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공헌한다. 먼 훗날 감독이 된 이후에는 이탈리아에 카테나치오 기틀을 세운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적게 받은 기회 대비 우수한 득점력을 보엿던 프로시는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결승전을 포함한 4경기에서 7골을 득점하며 조국의 우승을 이끌며 금메달을 목에 거는 일등공신이 되었으나 1938 프랑스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19위 클라우디오 살라

생년월일: 1947년 9월 8일
A매치 기록: 1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197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했던 윙어로 빠른 드리블 돌파와 민첩한 몸놀림으로 상대 수비를 뚫어낸 뒤 양발 모두를 사용한 적절하고 날카로운 크로스와 슈팅을 자랑해 팬들로부터 골의 시인이라 불렸다.
몬차와 나폴리를 거쳐 토리노에 입단한 살라는 풀리치, 그라지아니와 함께 공격 편대를 구성해 활약하며 1970년대 그라나타의 약진을 이끌며 1970-7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고 1975-76 시즌에는 엘 토로의 27년 만에 스쿠테토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다. 이듬해에도 세리에 A 준우승을 이끔과 동시에 구에린 도르를 재차 수상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종종 출전했던 살라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참가해 네덜란드와의 2차 조별리그 최종전과 브라질과의 3.4위전에 모습을 드러냈고 은퇴한 뒤인 2016년에 토리노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8위 파올로 풀리치

생년월일: 1950년 4월 27일
A매치 기록: 토리노 FC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19경기 5골
197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했던 다재다능한 윙포워드로 양발 모두를 사용해 날카로운 슈팅을 날렸으며 키가 큰 편이 아니었음에도 높은 점프력을 바탕으로 한 헤더로 득점에 능했기에 이탈리아의 축구 저널리스트계의 대부 지아니 브레라는 그에게 풀리치클론, 즉 싸이클론 풀리치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AC 레냐노에서 프로 데뷔를 이뤄냈고 1967-68 시즌에 토리노로 이적해 토리노 U-19 팀의 캄피오나토 프리마베라 2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우며 주목받았던 풀리치는 살라, 그라지아니와 함께 공격 편대를 구성해 활약하며 1970년대 그라나타의 약진을 이끌고 1970-7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5-76 시즌에는 엘 토로의 27년 만에 스쿠테토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그 과정에서 리그 21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에 올랐다.
토리노 FC 통산 출전 2위와 통산 최다 득점자에 랭크되었으며 세리에 A 득점왕을 3회 수상한 풀리치는 상술한 활약을 펼친 살라는 은퇴한 이후, 2014년에 구단 최초로 토리노 F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네 명의 선수 중 하나였고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1874 서독 월드컵과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참가했다.
17위 로렌조 인시네

생년월일: 1991년 6월 4일
A매치 기록: 54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63cm / 몸무게 59kg
주 소속팀: SSC 나폴리
2010년대 이탈리아 최고의 측면 공격수로 163cm의 작은 키를 지녔지만 빠른 스피드와 강력한 킥력은 물론 감각적인 패싱력을 통해 골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능했다.
나폴리의 로컬 보이였으며 여러 팀으로 임대를 다녀왔다가 다시 돌아와 구단의 레전드가 된 인시녜는 세리에 A 준우승 3회와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인시녜 개인도 2013-14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에 올랐다.
2010년대 아주리 군단에서 주축으로 활약한 인시녜는 2014 브라질 월드컵과 유로 2016에 출전했으며 벤투라의 무능한 체제에서 본 포지션에서 뛰지 못하며 부진하는 악운을 겪었으나 만치니 감독 부임 이후 유로 2020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아주리의 우승에 공헌하며 앙리 들로네를 들어냈다.
16위 안젤로 디 리비오

생년월일: 1966년 7월 26일
A매치 기록: 4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세리에 7공주라고 불리던 시절에 활약했던 다재다능한 윙어로 마치 한혈마와 같은 스테미너를 가져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며 측면에서 헌신적인 공수 가담이 눈에 띄며 날카로운 크로스로 찬스를 만드는 부분은 물론 집요한 맨 마킹으로 상대 공격수를 견제했으며 공을 빼앗기면 바로 재압박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 유려하게 대처하는 우수한 전술안과 뛰어난 양발 사용 능력을 겸비해 좌우 윙어는 물론 측면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 그리고 메짤라의 위치에서도 본 포지션 못지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30대 초반에야 전성기가 온 대기만성형 선수로 유명한 디 리비오는 초년에는 하부리그를 떠돌다가 마르첼로 리피의 간택을 받아 1993-94 시즌 유벤투스로 입성한 이후 비안코네리 군단의 세리에 A 3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3회 진출 및 1995-96 시즌 우승을 이뤄내는데도 큰 공을 세웠다.
잠브로타에게 밀려 피오렌티나로 이적해서도 2000-0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구단이 파산하고 하부리그에서 재창단했을 때에도 하부 리그에서 활약해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올려놓고 불혹의 나이로 은퇴했고 은퇴한 뒤인 2016년에 피오렌티나의 팬들이 선정한 구단 공식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종종 소집된 디 리비오는 UEFA 유로 1996에서는 첫 경기에 선발로 나섰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첫 경기에서 활약했으나 이후에는 부상으로 뛰지 못했다. UEFA 유로 2000과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로 나섰는데 2002 한일 월드컵 16강 대한민국전이 그의 아주리 군단에서의 마지막 경기였다.
15위 마우로 카모라네시

생년월일: 1976년 10월 4일
A매치 기록: 55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2000년대 세리에 A에서 이름을 날린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의 이중국적의 측면자원으로 우수한 발기술과 교묘한 드리블 돌파와 한 박자 빠른 오른발 크로스로 골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능했으며 왕성한 활동량도 겸비해 중앙 미드필더와 윙어 사이의 포지션인 메짤라의 자리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선수 시절 초년에는 남미와 북중미 무대에서 활약하다가 2000-01 시즌 엘라스 베로나에서 세리에 A 무대에 데뷔해 2002-03 시즌에 유벤투스에 합류한 카모라네시는 그 해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고 이후에도 두 번의 우승이 칼치오 폴리로 취소당하고 그에 대한 처벌로 강등을 당했으나 팀에 충성심을 보이며 잔류해 2006-07 시즌 세리에 B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2007-08 시즌에는 팀원들 대부분이 부진한 와중에 델 피에로와 함께 분전하며 팀을 3위에 올려놓는 활약을 펼쳐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다.
아르헨티나에서 귀화한 카모라네시는 아주리 멤버로 UEFA 유로 2004 시절부터 활약했으며 특히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주전 멤버로 활약하며 팀의 월드컵 우승에 공헌했다.
14위 브루노 모라

생년월일: 1937년 3월 29일
A매치 기록: 21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AC 밀란
최전성기 시절에는 세계 최고의 아웃사이드 라이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던 선수로 당대 세리에 A 최고의 스피드스터로 유명했는데 상대 수비수를 제치는 페인트 동작과 공간이 생기면 날카로운 오른발 크로스를 날리며 중앙 공격수들을 지원했다.
삼프도리아에서 데뷔해 유벤투스에서 마법의 삼총사라 불리던 공격라인을 보좌하며 1960-6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경험한 모라는 AC 밀란에서도 아우타피니, 리베라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며 1962-63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말년에는 안젤로 소르마니, 쿠르트 함린 등과 경쟁하며 1966-67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및 1967-6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고 은퇴한 뒤에는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잠시 활약한 모라는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조기에 탈락했지만 한 가지 기록을 남겼는데 스위스를 상대로 2분 만에 득점하며 역대 이탈리아 선수 월드컵 최단시간 골 기록을 세웠다.
13위 피에리노 프라티

생년월일: 1946년 12월 13일
A매치 기록: 14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AC 밀란
1960년대 하반기 AC 밀란의 공격을 이끌었던 공격수로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소화했으며 빠른 스피드와 골문 앞으로 침투해 날리는 벼락같은 오른발 슈팅으로 득점하는 플레이를 보고 팬들은 그를 두고 마치 중세 유럽 시절에 유행했던 흑사병처럼 단숨에 상대를 제압한다고 하여 흑사병 피에리노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AC 밀란 구단 통산 득점 10위에 랭크된 프라티는 로쏘네리 군단에서 활약하는 동안 1967-68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UEFA 컵 위너스컵 더블 우승,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 및 1968-69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는 미헬스가 지휘하고 바소비치와 크루이프가 코어로 활약하던 아약스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우승에 크게 기여했고 그 해에 투표한 발롱도르 투표에서 8위를 기록했다.
1967-68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에 오른 프라티는 아주리 군단에서도 UEFA 유로 1968과 1970 멕시코 월드컵 스쿼드에 들었으나 백업으로 나서며 유로 우승과 월드컵 준우승을 경험했으며 은퇴한 뒤에는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2위 아마데오 비아바티

생년월일: 1915년 4월 4일
A매치 기록: 18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볼로냐 FC
제2차 세계대전 직전과 직후에 활약했던 윙어로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기술을 겸비했으며 평발이었음에도 훌륭한 드리블로 상대를 제압했으며 특히 스텝 오버를 기가 막히게 구사하기로 이름이 높았으며 본 포지션인 아웃사이드 라이트는 물론 인사이드 포워드도 소화할 수 있었고 득점력도 준수했다.
볼로냐 역사상 최고의 윙어로 평가받는 비아바티는 1930년대 하반기 볼로냐의 전성시대를 이뤄내며 로쏘블루의 세리에 A 4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볼로냐의 전성기가 지난 뒤에도 헌신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은 비아바티는 1938 프랑스 월드컵에 주전으로 참가해 우승에 공헌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아주리 멤버들의 대부분이 토리노 소속으로 채워질 때도 토리노의 윙어 오솔라를 상대로 주전 경쟁에서 이겨내며 1947년까지 주전으로 활약했다.
11위 레오폴도 콘티

생년월일: 1901년 4월 12일
A매치 기록: 31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이탈리아 축구 초창기를 대표하는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빠른 스피드와 교묘한 왼쪽 사이드 드리블 능력을 겸비했으며 인사이드 포워드와 침착한 원투패스 이후 상대 수비의 배후로 침투해 득점하는 플레이에 능했다.
초창기 인테르를 대표하는 스타였던 콘티는 1919-20 시즌에는 이탈리안 풋볼 챔피언쉽 우승을 이뤄냈으며 1929-30 시즌에는 주세페 메아차와 호흡을 맞춰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낸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초창기 역사의 중요한 인물이었다.
1920년대 아주리 군단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콘티는 1924 파리 올림픽과 1927-1930 중유럽컵에 참가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우승의 영예를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