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10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2월 25일 기준입니다.
*북유럽에 해당하는 국가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 6개 국가입니다.
10위 아스비외른 할보르센
생년월일: 1898년 12월 3일
국적: 노르웨이
A매치 기록: 19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1920년대 독일 무대 정상급 선수로 군림하던 노르웨이 출신의 선수로 키는 작았지만 다부진 체격을 바탕으로 상대 센터 포워드와의 경합에서 밀리지 않았으며 적절한 포지셔닝과 강력한 맨 마킹 실력, 그리고 높은 수준의 수비라인 컨트롤을 바탕으로 수비수들의 빈틈을 커버하는데 능했으며 한혈마와 같은 지구력과 정밀도 높은 패싱력을 겸비해 경기장 곳곳을 뛰어다니며 경기장 전역에 영향력을 끼쳤으며 여기에 강력한 리더십까지 갖췄다.
자국의 사르프스보르그에서 데뷔해 활약한 할보르센은 1917년의 노르웨이 컵 결승전에서 당시 18세의 어린 나이로 주장완장을 차고 우승에 공헌했음은 물론 노르웨이 대표팀에서도 1920 앤트워프 올림픽에도 참가했다. 의외로 1921년부터 축구선수를 접고 함부르크로 이사해서 사업가가 되려고 했으며 해운 회사, 선박 중개 및 보험 회사를 운영했는데 자신의 축구 선수 경력을 숨기고 사업에만 집중하려 했지만 함부르크 SV가 그의 동료를 통해 할보르센의 존재를 알게 되자 적극적으로 영입을 위해 힘썼다. 결국 함부르크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고 선박 중개인 일도 병행했다.
1921년에 함부르크에 합류한 할보르센은 디 로토센의 북독일 챔피언십 9회 우승과 뉘른베르크와 함께 공동 우승을 차지한 1921-22 시즌을 포함한 독일 챔피언십 3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통산 25개의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며 당대 독일무대 최고의 센터하프로 활약했으나 1934년에 나치당이 독일의 정권을 장악하며 독재의 바람이 불자 독일을 떠나 노르웨이로 돌아갔다.
9위 크누트 노르달
생년월일: 1920년 1월 13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26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IFK 노르셰핑
1940년대~50년대 초반에 명성을 날린 스웨덴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주 포지션은 하프백이지만 센터하프와 양 풀백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는데 예술적인 슬라이딩 태클과 강력한 스트랭스를 앞세운 수비력과 넓은 커버범위, 그리고 숏패스와 롱패스를 가리지 않고 정확하게 앞선으로 배급했음은 물론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하프백치고는 훌륭한 득점력을 보였다.
유스 시절에는 회르네포르스에서 센터 포워드로 선수 커리어를 시작했으나 IFK 노르셰핑에서 데뷔해 하프백과 풀백에서 활약하며 알스베스칸 5회 우승과 스베스카 쿠펜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동생 군나르 노르달이 합류한 뒤에는 1944-45 시즌부터 1947-48 시즌까지 리그 4연패를 이뤄냈다. 그리고 1949년에는 굴드불렌을 수상하며 그레놀리 삼총사가 떠난 스웨덴 리그 최고의 선수로 군림하기도 했고 AS 로마에서도 수네 안드레손, 스티크 순드크비스트와 함께 또 다른 스벤스카 트로이카로 활약했지만 그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세리에 B로 강등당했는데 팀에 남아 승격을 이뤄내고 다시 스웨덴으로 복귀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형 베르티 노르달 및 동생 군나르 노르달과 함께 노르달 삼형제로서 활약하며 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는데 1948 런던 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 덴마크, 유고슬라비아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결승리그를 통과해 3위에 올랐다. 여담으로 노르달 삼형제는 모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불렌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8위 수네 안데르손
생년월일: 1921년 2월 22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28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AIK 포트볼
경기장에서 특유의 무표정으로 모나리자라 불렸던 1940년대 하반기~50년대 상반기 유럽 무대 최고 레벨의 하프백으로 광활한 시야를 바탕으로 장거리에서 상대 수비진을 무너트리고 득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경이로운 패스와 상대 수비로부터 볼을 완벽하게 지켜내는 뛰어난 볼 컨트롤을 보였으며 느린 스피드에도 정확한 볼 터치를 바탕으로 훌륭한 드리블을 선보일 수 있었으며 종종 날리는 중거리 슈팅으로 경기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
하가룬스 IS에서 데뷔해 AIK 포트볼에 입단해 첫 전성기를 누린 안데르손은 AIK 포트볼에서 스벤스카 쿠펜 2연패를 이뤄냈고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1948 런던 올림픽 금메달 및 1950 브라질 월드컵 결승리그 진출 및 3위에 공헌했는데 특히 올림픽과 월드컵에서는 전 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AS 로마로 이적하자 스웨덴 축구 협회의 아마추어리즘 고수로 인해 더 이상 대표팀과 인연을 맺지 못했고 심지어는 로마에서도 첫 시즌 강등이라는 시련을 경험했다. 이후 스웨덴으로 돌아와서는 IFK 에스킬스투나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뤄내기도 했다.
7위 슈테판 슈바르츠
생년월일: 1969년 4월 18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69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SL 벤피카
1990년대 유럽 무대에서 다재다능한 선수로 이름을 날린 3선 미드필더 겸 사이드백으로 우수한 스테미너를 바탕으로 폭넓은 지역에서 공수 양면으로 뛰어난 영향력을 보여줬으며 강력한 중거리 슈팅은 물론 우수한 축구 지능을 앞세워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는 물론 레프트백과 레프트윙에서도 훌륭한 기량을 선보였다.
말뫼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알스베스칸 정규리그 2회 우승 및 1988년 챔피언 결정전 우승, 그리고 1989년 스벤스카 쿠펜 우승을 이뤄내며 주목받은 슈바르츠는 이후 벤피카에서는 프리메이라 리가 2회 우승, 아스날에서는 1994-95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준우승, 피오렌티나에서는 1995-96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및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이뤄냈으며 발렌시아에서도 1998년 UEFA 인터토토컵 우승 및 1998-99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냈고 말년에는 잉글랜드의 선덜랜드에서 활약했다.
1998년 굴드불렌 수상자인 슈바르츠는 만 21세부터 대표팀에 소집되었는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UEFA 유로 1992와 1994 미곡 월드컵에서 조국의 준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은퇴한 뒤인 2020년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6위 닐스 미델보예
생년월일: 1887년 10월 5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15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첼시 FC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초의 북유럽인이자 팬들로부터 위대한 덴마크인이라 불렸던 1910~20년대에 명성을 떨친 하프백으로 큰 키와 북유럽 특유의 강건한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수들을 찍어 눌렀으며 패싱력도 준수했음은 물론 육상 종목인 3단 뛰기와 100m 달리기, 그리고 800m 달리기에서 당시 덴마크 기록을 세웠을 정도로 스피드와 점프력도 뛰어났다.
덴마크의 쾨벤하운 볼드클럽에서 1912-13 시즌 우승을 이뤄냈고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거쳐 첼시로 이적해 첼시 역사상 최초의 비 영연방 선수로 활약한 미델보예는 은행원 겸 아마추어 축구 선수로 활약했는데 본업으로 인해 원정경기에 참가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첼시에서 10년을 활약했으며 심지어는 주장완장을 차기도 했다.
덴마크 대표팀에서도 오랜 기간 활약한 미델보예는 1908 런던 올림픽에서 프랑스 B팀을 상대로 90 대승을 거두었고 4강전에서는 프랑스 1군을 상대로 17-1 대승을 거두는데 공헌했다. 비록 결승전에서 영국 연합팀한테 2-0으로 패했지만 마델보예는 총 3골을 득점했다, 1912 스톡홀름 올림픽에서도 주장으로 참가했는데 프랑스를 2-0으로, 노르웨이를 7-0으로 격파했으며 4강전에서는 네덜란드를 4-1로 이겼다. 비록 결승전에서는 또 영국에게 패했지만 그래도 은메달을 수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5위 요나스 테른
생년월일: 1967년 3월 20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75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SL 벤피카
1980년대 하반기와 1990년대 상반기에 활약했던 중원 자원이자 리베로로 스피드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과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양질의 패스로 팀의 빌드업을 주도했으며 기습적인 슈팅으로 득점하거나 분위기를 가져오는 부분에도 능했다.
말뫼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테른은 구단의 정규리그인 알스베스칸 5회 우승 및 스웨덴 챔피언 결정전 2회 우승을 이뤄냈고 벤피카에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1989-9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 및 1990-91 시즌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당대 최고의 리그였던 세리에 A의 나폴리와 AS 로마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1989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불렌을 수상한 테른은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유로 1992와 1994 미국 월드컵에서 바이킹 군단의 주장으로서 준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기에 은퇴한 이후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위 얀 몰비
생년월일: 1963년 7월 4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33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92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서 이름을 날렸던 덴마크의 중원 사령관으로 비록 스피드는 느렸지만 큰 체구를 바탕으로 한 수비력과 광활한 시야와 정밀도 높은 중장거리 패스로 상대의 허를 찌르며 많은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는데 리버풀 구단 내에서 자체적으로 선정한 구단 역사상 최초의 패서 랭킹에서 알론소, 제라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콜딩에서 데뷔해 아약스로 이적한 뒤에 1982-83 시즌 에레데비시와 KNVB컵 더블을 이뤄내며 주목받은 얀 몰비는 리버풀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그레이엄 수네스를 완벽하게 대체하며 잉글랜드 풋볼 리그 3회 우승 및 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다. 몰비가 이뤄낸 뒤 리버풀은 30년 가까이 리그우승을 하지 못했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덴마크 대표팀 소속으로도 맹활약한 몰비는 UEFA 유로 1984에서 조국을 준결승에 올렸고 1986 멕시코 월드텁에서도 서독, 우루과이, 스코틀랜드라는 강호들을 상대로 전승을 거두는데 공헌했다.
3위 보 라르손
생년월일: 1944년 5월 5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70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말뫼 FF
1960년대 하반기와 7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미드필더로 높은 전술안과 우수한 체력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경기장을 지배했으며 골 결정력도 출중해 가끔씩 스트라이커로 기용되기도 했다.
말뫼에서 공격수로 1965년 알스베스칸 우승을 이뤄냈고 1963년과 1965년 득점왕에 오르는 등 두각을 나타낸 라르손은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해서는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바꿔 활약하며 1968-69 시즌 분데스리가 MVP에 올랐고 다시 말뫼로 돌아온 뒤에는 1970년대의 황금기를 이뤄내며 이전에 기록했던 우승컵을 포함해 알스베스칸 6회 우승 및 스웨덴컵 4회 우승을 이뤄냈다.
1965년과 1973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불렌을 수상한 보 라르손은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1970 멕시코 월드컵부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까지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바이킹 군단의 8강 2차 조별 리그 진출을 이뤄냈다. 보 라르손은 은퇴한 뒤에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위 글렌 스트룀베리
생년월일: 1960년 1월 5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52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아탈란타 BC
일명 금발의 바이킹이라 불렸던 1980년대 스웨덴과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했던 당대 정상급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90분 내내 지치지 않고 왕성한 활동량으로 아군과 상대 진영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녀 마라톤 선수라 불렸으며 거대한 피지컬로 경합 상황에서 상대를 압도하기도 했다.
예테보리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스트룀베리는 스웨덴 컵 3회 우승 및 1982년 알스베스칸과 UEFA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결승전 2차전 함부르크 원정에서는 함부르크의 중원을 완벽하게 짓밟아 3-0 대승을 이뤄내며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이후 벤피카에서는 프리메이라 리가 2연패를 이뤄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전성기는 아탈란타에서 활약하던 시절인데 1985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불렌을 수상했고 1986-87 시즌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는 1980년대 내내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암흑기라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천신만고 끝에 본선에 진출해 활약했다. 당연하게도 은퇴한 뒤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위 쇠렌 레르비
생년월일: 1958년 2월 1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67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1980년대 유럽 전역에 이름을 날렸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지치지 않는 지구력을 바탕으로 활발한 공수 가담을 보여주며 경기장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대포와도 같은 왼발 중거리 슈팅을 앞세워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도 올라본 적이 있었을 정도로 득점력도 우수했다.
네덜란드의 양대 강호 아약스와 PSV에서 모두 레전드로 통하는 레르비는 양 팀을 통틀어 에레데비시 7회 우승을 이뤄냈고 특히 1983년에는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87-88 시즌에는 PSV에서 에레데비시와 KNVB컵에 이어 유러피언 컵에서도 우승하며 트레블을 이뤄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을 각각 2회 우승했고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은에 2회 선정되었다.
조국 덴마크에서도 데니쉬 다이너마이트 시대의 엔진으로 활약하며 UEFA 유로 1984 준결승 진출이라는 호성적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서독, 스코틀랜드, 우루과이와 한 조에 속하며 죽음의 조라 평가받았던 조에서 3전 전승을 거두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는데 그 과정에서 활약상이 대단해 구에린 스포르티보지 선정 1986 멕시코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은퇴한 뒤에는 덴마크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